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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웹진 추천 숨은 맛집 - ① 강릉

 

길따라 맛따라 ①

산과 바다와 ‘음식’이 있는 강릉

 

서로 “어떻게 그걸?”이라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봤다. ‘방풍(防風)’에 대해서 물어봤다. “혹시 강릉에도 방풍나물이 있는가?” 친분 있는 해물전문점 ‘기사문’의 셰프가 대답했다. “그럼요. 봄에는 자연산 방풍도 구할 수 있습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강릉 토박이 ‘기사문’ 셰프는 “이 사람이 어떻게 방풍을 알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방풍은 제주도, 거제도 등 섬에서만 자란다”고 믿고 있었다. 마침 제주도에서 방풍죽을 아주 맛있게 먹었던 참이라 강릉에서 방풍을 만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글 | 황광해 칼럼니스트

 

 

역사를 알면 강릉이 보인다

 

모두 교산 허균 때문이었다. 허균은 외가가 강릉이다. 한평생 풍운아로 살았다. <홍길동전>의 필자로 알려졌지만 자신의 일생도 ‘홍길동’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 아버지 허엽은 경상관찰사가 되었다. 제법 높다. 형들도 모두 이조판서, 창원부사 등 벼슬을 했다. 동생이 그 유명한 허난설헌이다. 죽고 나서 오라비 허균이 누이 허난설헌의 책을 중국어로 번역, 출간했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에 죽었는데 허난설헌의 책을 본 중국인들이 죄다 “나는 뭘 하다가 스물일곱을 넘겼는가?”라고 자책했다던가? 허엽, 형 두 명, 허균, 누이를 묶어서 ‘허씨 5성(星)’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천재 집안이다. 이 천재 집안의 5명 중 제 명에 죽은 이는 첫째 아들 하나뿐, 나머지 4명은 모두 객사하거나 역모로 몰려 죽었다는 점이다. 천재 집안의 불행한 역사다.

 

이 천재 집안의 허균이나 허엽은 ‘음식’과도 질긴 인연이 있다. 유학자들이 음식이라니?

 

아버지 허엽은 초당두부를 개발(?)했다. 점잖은 체면에 직접 만든 건 아니고 ‘만들어보라’고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두부를 만들려면 간수가 필요하고 간수는 염전의 소금에서 얻는다. 문제는 동해에는 염전이 힘들다. 하여,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강문마을 앞의 바닷물을 길어다 잘 써보라고 힌트를 줬다는 뜻이다. 허엽의 호가 ‘초당(草堂)’이다. 그래서 오늘날 ‘초당마을’ ‘초당두부’가 나왔다는 야사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맞는다면 초당두부의 역사는 무려 450년을 넘겼다는 말씀이다. 초당 허엽은 1563년 삼척부사를 지냈다. 처가가 강릉이니 강문마을 언저리를 오갈 때는 대략 이 무렵일 것이다.


 

 

 

 ▲ 정동진

 ▲ 사천진 앞바다

 

 

 

 ▲ 강릉 선교장

 ▲ 허난설헌생가터

 

문제의 ‘방풍나물, 방풍죽’은 허균의 음식 에세이집 <도문대작>에 나오는 이야기다. 첫 머리에 방풍이 등장한다.

 

“나의 외가는 강릉이다. 그곳에는 방풍(防風)이 많이 난다. 2월이면 그곳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에 이슬을 맞으며 처음 돋아난 싹을 딴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다 끓으면 찬 사기그릇에 담아 뜨뜻할 때 먹는데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 동안은 가시지 않는다(후략)”

 

벼슬살이가 순탄할 때는 음식 칼럼을 쓰는 ‘뻘짓’을 하지 않는다. 허균도 벼슬이 끊어지고 전북 함열에 유배 갔을 때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썼다. 책 이름이 묘하다.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신다’는 뜻이다. 예전에 먹어봤으나 지금은 먹지 못하는 음식을 글로 남겼다. 음식 공부를 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 책인데 나도 마찬가지, 수도 없이 읽었다. 늘 첫 문장을 흘려 보다가 어느 날 강릉에서 방풍죽이 생각났다. 그래서 물어봤고 덕분에 다음 날 아침 잘 끓인 방풍죽을 먹었다. 허균 정도의 입맛은 아닌지, 사흘 동안 입안에 향기가 남지는 않았는데 그 후로부터 강릉만 생각하면 허균이 떠오른다. 물론 허균의 글을 보면 뻥이 조금 센 부분이 있다. 자신이 만났던 상당수의 음식을 극찬하는 경우도 있다. 방풍죽 같은 경우는 안타까운 음식이긴 하다. 이른 봄에 먹으면 참 향기로운데 우리는 조미료, 단맛, 감미료의 맛에 찌든 탓에 그 별미를 잃어버렸다.

 

 

순박하고 담백한 강릉 음식 대전


강릉은 바다와 산이 더불어 이어진 곳이다. 반가와 깊은 산속 서민들의 삶이 더불어 이어진 곳이다. 산과 바다의 음식이 있고 반가와 상민들의 음식이 있다.

초당 허엽의 두부, 초당두부는 지금도 초당마을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원조초당(순)두부’는 3대 8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두부집이다. 꾸준히 순두부, 모두부, 비지 등을 내놓고 있다. 가게 앞의 솔밭 정취는 덤이다.

 

 

 

 

▲ 원조초당(순)두부

 

 ▲ 신동옥 분틀 메밀국수

 

 

먹고 살기 힘든 산속에서는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메밀로는 막국수와 메밀국수를 만들었다. 메밀의 겉껍질을 벗기면 ‘녹쌀’이 된다. 쌀로 치자면 현미(玄米)쯤 되는 메밀쌀이다. 한 번 더 벗기면 하얀 메밀쌀이 된다. 메밀 백미다. 기계와 전기가 귀하던 시절, 절구와 맷돌만 사용하면 고운 메밀가루를 얻기 힘들었다. 막국수는 메밀 째로 혹은 녹쌀을 갈아서 얻은 거친 가루로 만들었다. 겉껍질과 속껍질이 남아 있었다. 막국수를 먹고 나면 치아 사이에 까만 메밀껍질이 끼었다.

‘신동옥분틀메밀국수’는 예전 막국수 내릴 때 사용하던 분틀을 식당 공간에 보관하고 있다. 지금도 분틀로 막국수를 만든다. 100% 국산 메밀가루를 사용한다. 녹쌀이 아니라 하얀 메밀가루를 사용하니 막국수가 아니라 메밀국수다.

 

 

 

▲ 진부집

 

 ▲ 철뚝소머리집

 

 


강릉 중앙시장 안의 ‘진부집’에서는 메밀로 만든 메밀총떡과 배추전, 감자전 등을 만날 수 있다. 시장 통의 허름한 가게다. 주문 받으면 바로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부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전은 감자를 갈아서 바로 부쳐내는 것이다. 맛있다.

 

고기 음식이지만 서민적인 음식은 주문진에서 만날 수 있다. ‘철뚝소머리집’이다. 메뉴판에는 소머리국밥과 여름 콩국수, 겨울 만둣국만 딸랑 있다. 메뉴에는 없지만 소머리수육도 가능하다. ‘철뚝’이란 이름이 왜 붙었는지는 현장에 가보면 바로 이해한다. 1960-70년대 분위기의 시골 마을이다. 슬레이트 지붕이 있고 블록 담 위로 호박넝쿨이 엉겨 있다. 참 한적한 시골 분위기가 물씬하다. 다행히 음식도 오래 전의 수수하고 소박한 맛을 제대로 지니고 있다. 아무렇게나 썰어내는 수육도 좋고 소머리국밥도 수준급이다. 생선 흔한 바닷가 사람들이 별미로 낮술을 즐기기도 하는 동네 사랑방 느낌이다.

‘서지초가뜰’은 양반가와 상민이 뒤섞인 밥상을 내놓는다. 음식은 소박한 우리의 옛 밥상이다. 화려한 식재료도 없고 눈에 띄는 음식도 없다. 푸근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대로 만든 한식 밥상이다. ‘서지초가뜰’의 밥상은 창녕 조 씨 가문, 반가의 밥상이다. 밥상을 받는 이는 일꾼들이다. 못상, 질상 등으로 표현하는데 모내기가 끝난 후 일꾼들을 위하여 반가 집안에서 차려낸 음식이다. 볼품은 없으나 손이 많이 가는 고추부각이나 ‘씨종지 떡’ 등은 꼭 맛봐야 한다.

 

이른 봄철이면 강릉의 해물전문점 ‘기사문’에서 방풍죽을 만날 수 있다. 겨울에는 복어누룽지탕, 곰치국 등을 탕반으로 내놓지만 이른 봄 자연산 방풍이 제철을 맞으면 거칠게 간 쌀과 더불어 자연산 방풍으로 맛을 낸 죽을 내놓는다. 방풍나물 무침도 향이 뛰어나다. 돌가자미, 줄가자미, 복어, 꽃새우 등 계절별 고급 어종도 좋지만 강릉에서 만나는 ‘허균의 방풍죽, 방풍나물’은 각별하다.

 

본문에 소개된 관광지 & 맛집정보

 

 


 관광 정보
1 - 정동진
2 - 사천진 앞바다
3 - 강릉 선교장
4 - 허난설헌생가터


 맛집 정보
5 - 원조초당(순)두부 : 강원 강릉시 초당동 309-4 / 033-652-2660
6 - 신동옥 분틀 메밀국수 : 강원 강릉시 노암동 231-5 / 033-641-6162
7 - 진부집: 강원도 강릉시 성남동 50 강릉중앙시장 먹자골목 내
8 - 철뚝소머리집: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리 326-2 / 033-662-3747
9 - 서지초가뜰: 강원 강릉시 난곡동 264 / 033-646-4430
10 - 기사문: 강원도 강릉시 교1동 1894-1 / 033-646-9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