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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제철 음식 꼬막, 낙지 그리고 꽃게

글_ 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서쪽 바다의 노을은 축복의 서막에 불과하다. 진짜 축복은 바다, 그중에도 갯벌에 있다. 노을이 마음에 양식을 주었다면, 갯벌은 우리에게 감칠맛 넘치는 몸 양식을 안겨준다. 수중에서 건져내기 힘든 수만 가지 좋은 맛이 바닷물이 빠진 갯벌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 ‘변산’은 주인공인 학수가 쓴 시 한 편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시는 단 세 줄로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내 고향은 폐항 / 내 고향은 가난해서 /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시의 내용이 주인공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진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나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 안에서 살아 온 사람은 누구에게 보여줄 나만의 노을 한 조각조차 갖고 있지 않다. 내 입장에선 돌아갈 수 있는 가난한 고향과 매일 보고 자란 노을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울 뿐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변산반도의 해넘이 풍경은 말문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우리나라 서쪽 바다의 노을 지는 풍경이 대체로 그렇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같이 발갛게 물 드는 때가 되면 말도 아끼고, 숨도 고르며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게 된다. 해가 사그라져 땅거미가 스멀스멀 퍼지도록 노을의 여운은 오래 간다. 그리고 물이 한참 빠진 갯벌은 항상 그 풍경과 함께 한다.

 

갯벌에서 나는 해산물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맛도, 영양도 좋지만 그 호사를 누리는데 드는 수고는 만만치 않다. 이를 테면, 갯벌의 조개를 채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우선 널배가 있다. 바닷물이 빠지기 전에 널배(뻘배라고도 불림)에 몸을 싣고 해안으로부터 최소 1km이상 나간다. 널배 위에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엎드리듯 올리고, 나머지 한쪽 다리가 동력이 되어 차가운 물과 진흙을 밀면서 움직인다.

 

멀리 나가는 동안 바다의 물이 빠지면 체를 널배에 걸어 온힘을 다해 개펄 바닥을 훑는다. 개펄에서 체를 드러면 조개가 한 바구니 담겨 있다. 이걸 털어 담고 다시 뻑뻑한 진흙을 훑고, 터는 작업을 반복한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7시간 동안 계속되는 노동이다.. 이 외에도 물이 찼을 때 배를 타고 나가 물이 빠지길 기다리거나, 경운기나 트랙터를 타고 물 빠진 갯벌에 달려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일일이 다니며 손으로 캐내고 뽑아야 한다.

 

이 계절 즈음, 갯벌에서 나는 것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꼬막이다. 꼬막의 다른 이름은 안다미 조개다.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다’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안다미로’에서 따온 참 예쁜 이름이다. 그만큼 작은 몸집 안에 꽉 찬 살과 참으로 진한 맛을 갖고 있다. 꼬막은 삶아 익혀도 입을 꽉 다물고 있는데, 껍데기를 여는 요령이 있다. 껍데기 이음매 쪽 움푹 팬 곳에 숟가락을 밀어 넣어 비틀 듯 들어 올리면 단단했던 껍데기가 힘없이 툭 열리고 만다.

그 와중에 참꼬막은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맑은 눈동자 같은 적고동색의 살이 특징이다. 탱글탱글 쫄깃한 식감에, 첫 맛은 간간하고 씹을수록 달고 고소하다. 새꼬막은 참꼬막의 속살에서 붉은 고동색의 윤기 있는 부분만 걷어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참꼬막보다 식감이 부드러운 대신 짭짤함과 배릿함이 훨씬 강렬하다.

 

꼬막은 싱싱한 것을 해감 하여 그대로 삶아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아니면 삶은 다음 밥에 넣어 꼬막밥을 지어도 맛있다. 양념장 하나만 있으면 다른 찬이 필요 없을 정도. 밀가루와 물을 개어 넣고 부침개로 지져 먹으면 더 구수하다. 쫄깃하고 짭조름한 맛에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반찬용으로 삶은 꼬막이 남았다면 살만 발라 미나리, 오이, 양파와 섞어 초무침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고소한 꼬막과 맛이 개운한 채소가 함께 내는 맛은 언제나 옳다.

 

갯벌의 맛에 낙지와 꽃게도 빼놓을 수 없다. ‘뻘낙지’는 무안이 유명하다. 봄 낙지보다 맛이 진하고 깊은 뻘낙지는 가을에 유독 살이 야들야들해 진다. 겨울에 대비하는 보양식으로도 으뜸이다. 오죽하면 ‘낙지는 쓰러진 소도 벌떡일어나게 만든다’는 말이 있을까. 낙지는 바락바락 주무르며 빨판을 손으로 훑어 내리며 씻어 준다. 칼로 도마를 탕탕 내리치며 낙지를 잘게 썰고 참기름을 쓱 뿌리면 그 유명한 ‘낙지 탕탕이’가 된다. 여기에 부드러운 소고기육회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호화로운 한 접시가 완성된다. 낙지를 뜨거운 밥과 섞어 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어도 맛있다.

시원한 국물 요리의 재료로도 자주 등장하는 낙지는 흔히 호박이나 무를 썰어 넣고 끓인 맑은 탕으로 즐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요리는 낙지미역국이다. 불려서 잘게 썬 미역을 푹 끓여 맛을 먼저 충분히 우려 낸 다음 국물이 팔팔 끓을 때 낙지를 넣어 탱글탱글하게 익힌다. 개운하고도 구수한 맛이 좋아 한 사발씩 들이키기에 충분하다.

갯벌에서 잡은 꽃게는 깨끗이 씻어 바로 찐 다음 그 싱싱한 맛을 봐야한다. 그게 제 맛이다. 빨갛게 익은 꽃게는 등과 배를 쩍하고 먼저 가른다. 그런 다음 야들야들하고 달콤한 살을 발라 먹고, 채 바르지 못한 가느다란 다리는 꾹꾹 씹어 단물을 쏙 빼먹어야 한다. 내장은 살살 긁어모아 뜨거운 밥과 섞어 먹는다. 두어 마리 남겨 두었다가 미나리와 두부를 넣고 된장과 고춧가루를 풀어 탕을 끓여 먹어도 좋다. 대파와 라면을 넣고 끓여 먹어도 별미다. 게 향이 은은하게 밴 진한 국물 맛은 아마 ‘인생 라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때 갯벌에서 거둬온 농게(작은 게)나 쏙, 조개 몇 알을 함께 넣으면 국물 맛이 한결 좋아진다.

 

갯벌에서 나는 해산물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나가기만 하면 뭐든 한 아름 거둬 돌아올 수 있는 노동의 단맛은 이 계절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진미다. 숨구멍을 찾아 소금을 뿌려 잡는 맛조개, 호미로 캐어 끄집어내는 모시조개, 꼬막, 백합 등은 물론 운이 좋으면 새조개나 가리맛조개처럼 귀한 것도 얻을 수 있다. 손이 빠르면 게, 힘이 좋으면 낙지까지 잡을 수 있다. 준비물은 진흙 위를 잘 걸을 수 있는 신발과 편안한 옷, 호미 같은 작은 삽(꽃삽), 바구니, 소금이면 충분하다. 한가한 주말, 가까운 서해 바다로 나가 보자.

 

 

  

<추천 맛집>

     서촌 계단집  

사시사철 맛있는 조개찜과 문어숙회를 먹을 수 있고, 제철에는 벌교 왕꼬막이 인기 메뉴다.

위치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길 15

메뉴 : 벌교왕꼬막 15,000원 / 통영 생굴회 15,000원 / 쭈꾸미 숙회 29,000원

문의 : 02-737-8412

 

     원조유림낙지  

스트레스 날리기에 딱 좋은 매콤한 낙지볶음이 주 메뉴다.

위치 : 서울 종로구 종로 24-8

메뉴 : 낙지볶음 24,900원 / 낙지비빔밥 10,900원 / 낙지해물파전 16,000원

문의 : 02-723-1741

 

     충남 서산집  

대를 이어 가을 꽃게의 참맛을 맛 볼 수 있는 곳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중앙로 1200

메뉴 : 꽃게요리(탕, 찜, 무침, 버범 등) 90,000~50,000원 / 낙지볶음 3만원 / 아구찜 45,000원

문의 : 032-933-8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