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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딱 한번 찾아오는 봄 손님, 죽순

글_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사계절은 돌고 돌아 봄은 매번 오지만 오늘은 인생에 딱 한번 뿐인 날이다. 봄날의 끄트머리를 어떤 기억으로 장식할까 고민 중이라면 서슴없이 대나무 숲으로 달려가자. 대나무 숲은 내 마음을 다독이는 푸른 소리와 풍경, 깨끗한 향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아삭아삭 맛좋은 죽순이 고개를 빤히 내밀고 기다리고 있다.

지난겨울은 모질게도 가물었다. 소복한 눈은커녕 비조차도 아까운 듯 찔끔찔끔 내렸다. 봄이 와도 하늘은 자린고비마냥 비에 인색하더니 4월이 다 지나갈 즈음 마침 봄비가 며칠 연이어 내렸다. 훈풍을 타고 살살 내리는 봄비는 소리조차 촉촉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혹시 보셨는지. 영화는 ‘라면 먹고 갈래?(원래 대사는 ‘라면 먹을래요?’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명대사로 유명하지만, 사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여러 가지 자연의 소리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작품이다. 거센 파도가 이는 바닷가, 눈이 펑펑 내리는 산속의 사찰, 바람에 휩싸인 대나무 숲의 소리는 잔잔하게 마음을 매료시킨다. 때문에 이 영화는 내게 이영애의 말간 얼굴이나 가슴을 치는 주인공들의 대사가 아니라 계절이 고스란히 담긴 소리의 울림으로 더 크게 기억된다. 5월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자연의 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계절이다.

 

 

봄비 맞고 쑥쑥 큰 죽순들

대나무 숲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곳에는 묘한 적막감이 흐른다. 댓잎만 사락사락 휘날릴 뿐, 고요하고 차분하다. 마치 숲 밖의 시공간과 단절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가만히 서서 파란 하늘에 일렁이는 초록의 대나무 무리를 올려다보는 일은 그 자체가 휴식이다. 느릿느릿 풍경을 잠깐 즐기다 보면 옆에 있던 손가락만한 죽순이 어느새 무릎까지 자라 있다(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봄날의 죽순은 그만큼 빨리 자란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죽순이 땅을 뚫고 나오는 소리가 숲 이곳저곳에서 들린다고 할 정도이다. 특히, 봄비가 내린 뒤에는 유난히 많은 죽순이 촉촉한 땅 위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야말로 우후죽순(雨後竹筍)이다.

 

 

죽순을 풍미 있게 즐기려면

죽순은 3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 땅을 뚫고 돋아난다. 지면 위로 30~40cm 정도 자란 죽순이 먹기가 좋다. 땅을 뚫고 올라와 열흘 정도 지나면 어느새 뻣뻣해져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순은 보존 기간이 짧아 캐자마자 가공하거나 조리해야 한다. 그러니 생생한 죽순을 맛보고 싶다면 5월이 딱 좋은 시기이다. 죽순은 여러 겹의 껍질로 싸여 있어 노르스름한 속살이 나올 때까지 계속 벗겨야 한다. 제철이면 껍질 벗긴 죽순을 도심 속 시장에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싱싱한 죽순은 그대로 먹으면 아리고 떫은 맛이 강하기 때문에 물에 삶거나 쪄야 한다. 통통한 죽순은 빨리 익도록 세로 방향으로 반 가르고, 너무 긴 것은 절반으로 썬다. 손질한 죽순은 쌀뜨물에 담가 30~40분 동안 푹 끓인다. 죽순 굵기에 따라 삶는 시간이 다르니 겉이 말랑말랑하게 눌리면 그만 삶아도 된다. 죽순을 삶다 보면 옥수수나 감자 찔 때처럼 구수한 내음이 온 집안에 퍼져 군침이 돈다.

 

삶은 죽순은 물에 담가 그대로 식힌다. 완전히 식은 죽순을 건져 물기를 빼고 조각조각 잘라 맛을 보면 달착지근함이 입 안 가득 은은하게 퍼진다. 죽순은 사실 맛보다는 아삭아삭 씹는 재미로 즐긴다. 연하게 간을 한 밥 위에 고추냉이 살짝 바르고 얇게 썬 죽순을 얹으면 사각거리는 초밥이 된다. 소금 참기름 장에 살짝 찍어 신선한 숙회로도 먹고, 봄채소와 삶은 고기, 해물을 함께 넣고 무침으로 먹어도 맛있다. 다른 채소와 썰어 장아찌나 피클로 만들어 두면 두어 달은 신나게 죽순의 아삭거림을 맛볼 수 있다.

 

 

윤기 좔좔 대나무밥에 대나무통 고기찜까지

맑고 연한 맛을 가진 죽순은 도화지 같은 재료라 양념이나 조리법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집에서 한번쯤 해볼 만한 요리로는 죽순밥을 추천한다. 버섯, 당근, 은행, 불린 다시마 등과 함께 도톰하게 모양 살려 썬 죽순을 섞어 밥을 짓는다. 멥쌀도 좋지만 끈기가 있는 찹쌀이 어울린다. 버섯이나 당근처럼 신선한 채소에서 물이 나오면 자칫 진밥이 될 수 있으니 수분을 흡수해주는 유부를 잘라 조금 넣는 것도 잊지 말자. 이렇게 갓 지은 밥에 식초와 물을 살짝 넣은 초간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맛있다. 초간장에 고춧가루나 송송 썬 실파를 약간 곁들여도 좋다. 참, 김에 싸 먹어도 훌륭하다. 갓 지은 죽통밥은 떡갈비와 환상 궁합을 자랑한다.

 

제철을 구실 삼아 대숲이 있는 담양이나 거제도 쪽으로 여행을 한다면 대나무 요리를 빼놓지 말고 먹어 보자. 담양의 대나무는 분죽과 왕죽이, 거제도에는 이보다 굵고 껍질도 두꺼운 맹종죽이 많다. 대나무 요리는 최소 3년 이상 자란 것을 사용해야 섬유질이 풍부해 조리 중에 나무가 쉽게 무르지 않는다. 대나무밥은 마디마디 자른 대나무에 찹쌀, 검은쌀, 콩, 밤, 호박, 은행, 잣, 대추 등을 채워 넣고 한지로 덮어 밥을 지은 것이다. 대나무의 진액이 밥에 스며들어 윤기가 좔좔 흐른다. 돼지고기를 대나무에 넣거나 댓잎으로 고기를 감싸 숙성시킨 다음 구워 먹기도 한다. 대통에 담아 둔 청주 한 잔 곁들이는 것도 빼먹지 말 것.

 

지름이 15cm가 될 만큼 굵게 자란 대나무를 이용해 한상 요리를 푸짐히 차려내는 식당도 있다. 대나무 마디마다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소시지, 해산물, 달걀, 호박, 연근, 밤, 인삼 같은 각종 재료를 나눠 넣고 통째로 가마에 구워 낸다. 기름기는 적당히 빠지고, 대나무의 촉촉함이 깃든 거대한 맛의 방주가 상을 채운다. 입가심은 댓잎차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어떤 산해진미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5월의 미식 여행이 완성된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5월은 죽순이 가장 맛있고, 대숲의 청아함도 하늘을 찌르는 때이다. 푸른 대나무가 선사하는 봄의 정취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꽃놀이 부럽지 않을 만큼 선선하고 기품 있는 댓놀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 죽림원 ]

6미터 길이의 대통에 수육, 문어, 전복 등을 넣고 푹 찐 대통용찜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 메뉴 : 대통찜 1인분 4만9천 원(4인분부터 주문 가능), 떡갈비정식 1인분 2만5천 원

• 위치 : 전남 담양군 월산면 가산길 358

• 문의 : 061-383-1292

 

[ 남도예담 ]

죽순초무침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환상의 떡갈비 요릿집.

• 메뉴 : 한우 떡갈비정식 3만 원, 한돈 갈비정식 1만7천 원

• 위치 : 전남 담양군 월산면 담장로 143

• 문의 : 061-381-7766

 

[ 인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

50년 전통의 담양 한우 떡갈비 전문점 덕인갈비를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식당.

• 메뉴 : 덕인 떡갈비 대통밥 정식 3만3천 원, 덕인 떡갈비 정식 2만8천 원

• 위치 :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176 신세계백화점 11층

• 문의 : 02-3479-1024

 

[ 차 이야기 ]

서울 종로 인사동의 대나무쌈밥 전문점.

• 메뉴 : 떡갈비정식 1만5천 원, 쌈밥 정식 1만4천 원

• 위치 : 서울 종로구 인사동8길 15

• 문의 : 02-735-8552